* 다음은 청년이 주도하는 탄핵 짚고 가기 집회를 왜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글입니다. 곧 나올 <탄핵 다이제스트> 소책자의 머릿말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이 책자는 탄핵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란 존칭을 쓰지 않고, '박근혜'란 표현을 쓰고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진실이 경멸 당하면 개인이 시들고 자유가 무너진다>>
‘최순실 아바타’, ‘최태민 악령 씌운 사람’, ‘정유라의 생모’, ‘세월호 7시간 동안 잠이나 쳐 잔 사람’, ‘청와대에서 비아그라 먹고 그룹섹스를 일삼은 변태’, ‘해외에 수십 조원을 은닉하고 있는 ‘부패의 여신’’…그해 겨울, 조중동(조선•중앙•동아) 등 이른바 ‘보수’ 언론이 하루 종일 이 같은 스토리를 반복했다. 김무성•유승민 등 소위 ‘우파 정치인’이 탄핵에 앞장섰다.
그 결과, 경악과 분노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박근혜는 ‘죽일 년’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단죄’, ‘박근혜 탄핵’이라 불리는 인민재판•마녀사냥의 피가 양손에 묻은 공범이 되고 말았다. 일단 ‘흉측한 일에 동조한 사람’이 되고 나면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박근혜라든지 탄핵이라는 단어 자체를 망각하고 싶어 했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기억을 살처분 하는 것—이것은 ‘인간’이라 불리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생존 기술’ 중 하나 아닌가! ‘박근혜’와 ‘탄핵’은 망각해야 할 단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만약 문재인•586 집단이 이 지경까지 나라를 망치지 않다면, 만약 미국과 중국 사이에 (현대문명의 핵심 가치를 둘러싼) 문명 전쟁이 진행되지 않았다면, 만약 중국의 위상 추락에 의해 북한 체제가 뿌리째 흔들리지 않았다면, 만약 홍콩•타이완•한반도에서 아시아 자유혁명의 물결이 꿈틀거리지 않았다면, 탄핵은 그냥 ‘편리하게, 너무나 편리하게’ 잊혀지는 일과성 해프닝이 될 뻔했다. 박근혜는 그냥 감옥에 가둬진 채 ‘편리하게, 너무나 편리하게’ 망각되어지는 ‘마녀’가 될 뻔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배경 때문에 이제 탄핵에 관한 진실을 더 이상 묻어 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탄핵은 조중동과 김무성•유승민 류(類)가 작동한 국내 정치였을 뿐 아니라, 미국•중국•북한이 연관된 국제 정치였기 때문이다. 이제 국내 정치, 국제 정치 모두 ‘탄핵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로또 맞은 사람들이다. 이 냉혹한 정치 논리 속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원칙을 관철시킬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권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키도록 강제할 수 있는 찬스가 왔다.
첫째, “진실이 경멸 당하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존엄이 파괴된다. 오직 진실존중만 개인존엄을 담보한다.”
둘째, “진실이 파괴되면 떼의 폭도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자유민주주의가 박살난다. 오직 진실존중을 위한 자유, 진실존중에 의한 자유, 진실존중의 자유(freedom for integrity, by integrity, of integrity)만 궁극적 자유다!”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나라는 해방공간에서 기초가 놓였고, 한국인이라 불리는 현대국가 국민은 6.25를 통해 다져졌으며, 현대문명의 풍요는 ‘한강의 기적’으로 만들어 졌다. 자유시민은 이제 탄핵 진실을 짚고 가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있다.
*진실존중(integrity 혹은 intellectual integrity)은, ‘나’의 입장 혹은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참을 참이라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뜻한다. 진실존중은 그리스 헬레니즘 및 르네상스(15~16세기)와 깊은 관계가 있다.
* 개인존엄’(individual dignity)은 “결코 훼손될 수 없는 실존적•영성적 존엄성(existential and spiritual dignity)이 우리 각자에게 내장돼 있으며 사회•정치는 이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라는 뜻이다. 개인존엄은 종교개혁 및 기독교(프로테스탄티즘) 인간관과 깊은 관계가 있다.